[입장문]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성평등가족부와 정치화된 여성운동에 바란다
-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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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는 여성의 인간적 존엄과 권익 향상을 위해 헌신해 온 모든 노력을 존중한다. 그러나 오늘 한국 사회에서 3·8 세계여성의 날이 실제로 어떤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여성의 날은 오늘날 보편적 여성인권의 상징처럼 소비되지만, 그 역사적 기원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혁명정치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유엔은 국제여성의 날을 공식 기념하고 있으나, 그 배경 설명에서도 이 날이 20세기 초 노동·사회주의 운동의 흐름에서 등장했다고 밝히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1910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사회주의 여성회의에서 클라라 제트킨 등이 국제적 여성의 날 제정을 제안한 것은 널리 확인된다. 따라서 오늘 3·8을 말하려면, 이 날의 유래가 단지 추상적 ‘권리의 날’이 아니라 분명한 정치운동의 토양 위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부터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일부 진보 여성단체들이 이러한 정치적 기원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늘의 3·8을 다시 정치동원과 진영구호의 장으로 돌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026년 제41회 한국여성대회의 공식 표어를 “빛의 혁명을 완수하라!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로 내걸었고, 행사 안내문에서도 “광장”, “여성주권자의 힘”, “성평등 민주주의”를 전면에 배치했다. 이는 여성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생활정책, 돌봄, 출산, 가족, 세대 지속가능성의 문제보다 정치적 상징과 운동 프레임을 앞세운 구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점은, 성평등가족부가 이러한 행사와 분명한 거리를 두기보다 사실상 그 무대에 함께 서고 있다는 점이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3월 7일 제41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축사했다. 같은 해 성평등가족부 여성신년인사회에서는 정책 키워드로 “안전, 평등, 성장”을 제시했다. 정부가 여성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정 이념적 구호가 선명한 집회성 행사에 부처 장관이 참여하는 모습은 국민 전체를 대표해야 할 정부가 특정 운동 진영의 언어를 공인하거나 후원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정부는 여성정책의 조정자여야지, 특정 정치색을 띤 운동의 동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지점에서 북한의 3.8 국제부녀절 선전 구조를 함께 보지 않을 수 없다. 북한 관영매체는 올해 3.8 국제부녀절을 맞아 여성들에 대한 축하장과 기념공연을 보도하면서, 여성을 “위대한 우리 국가의 융성번영”에 이바지하는 존재, 지방발전정책의 성과 속에서 보람찬 삶을 꽃피우는 여성근로자로 묘사했다. 즉, 북한의 3·8은 여성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확장보다 국가발전, 체제충성, 집단동원의 언어로 조직된다. 이는 여성을 독립적 인격체로 높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체제 목적에 봉사하는 상징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도 3·8이 다시금 이념, 체제, 정치운동의 도구로 소비되는 흐름에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대한민국과 북한은 전혀 다른 체제이고,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은 북한의 국가선전과 동일시될 수 없다. 그러나 여성의 삶을 실제로 개선하는 정책보다 운동의 상징, 혁명의 수사, 정치적 결집의 언어가 우선될 때, 여성은 다시 누군가의 기획 속에서 동원되는 객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북한의 3.8 선전과 한국 진보 여성운동의 정치구호를 같은 문맥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이는 동일성의 주장이 아니라, 여성 담론이 정치적 목적에 포획될 때 나타나는 구조적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다.
오늘 대한민국이 직면한 현실은 분명하다. 사회적 과제의 중심에는 저출생, 가족해체, 돌봄위기, 청년세대의 결혼·출산 기피, 세대 단절이 놓여 있다. 그런데 여성정책이 계속해서 남녀 대립과 정치 구호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여성과 남성의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정부와 여성단체가 정말 여성의 삶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투쟁의 언어보다 관계 회복의 언어, 대결의 프레임보다 가족과 공동체 재건의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최근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가족 관련 자료들 역시 가족 갈등, 우울감, 생활불안, 한부모 가구의 낮은 소득과 양육 부담 등 구체적 생활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여성 지위는 과거와 비교해 분명히 향상되어 왔다. 유엔개발계획의 성불평등지수와 각종 지표는 한국이 더 이상 여성의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후진국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여성정책은 과거식 적대 동원보다, 실질적 안전, 일·가정 양립, 돌봄 지원, 취약여성 보호, 가족 안정으로 방향을 재조정해야 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시대정신을 읽고자 한다면, 성평등가족부는 이념적 구호를 반복하는 부처가 아니라 생명과 가족, 안전과 돌봄, 세대 지속가능성을 책임지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
이에 위민앤패밀리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성평등가족부는 특정 진영의 정치구호가 전면에 선 행사에 사실상 동행하는 태도를 중단하고,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가족·여성정책 부처로서 중립성과 공공성을 분명히 하라.
둘째, 한국여성단체연합은 3·8 세계여성의 날을 정치투쟁의 무대로 사용하는 관행을 멈추고, 여성의 실제 삶과 가족·돌봄·안전 문제를 중심에 두는 책임 있는 시민운동으로 돌아오라.
셋째, 정부와 여성단체는 북한의 3.8 국제부녀절 선전을 ‘여성 존중’의 사례처럼 소비하거나 방조하는 인식에서 벗어나, 자유와 인권이 결여된 체제의 여성동원 구조를 분명히 비판하라.
넷째, 여성정책의 중심축을 남녀갈등과 이념동원에서 생명존중, 가족안정, 청년의 미래, 출산·양육 친화 환경 조성으로 전환하라.
세계여성의 날은 특정 이념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혁명과 투쟁의 상징을 반복하는 날이어서도 안 된다. 이 날은 여성의 존엄을 말하되, 동시에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살아갈 사회의 질서를 고민하는 날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상호 존중, 책임, 가족의 회복, 공동체의 재건 위에서만 열릴 수 있다.
2026년 3월 8일
사단법인 위민앤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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